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마태 12,46-50 참조)
지난 11월 바티칸 신앙교리부가 발표한 문헌에서 “트랜스젠더가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고, 세례성사의 대부모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바티칸은 동시에 트랜스젠더의 세례성사 혹은 세례성사에서 트랜스젠더 대부모의 조건을 분명히 명시했다. 바로 ‘신자들 안에 공공연한 추문이나 혼란을 야기할 위험이 낮을 경우’에 트랜스젠더가 세례성사를 받거나 대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23년 대림1주 서울주보에 실린 특별기고는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트랜스젠더의 세례성사가 자칫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이 갖고 있는 교리적 부당함'을 승인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된다는 주장은 명백히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이다. 세례성사를 통해 가톨릭 신앙을 갖고 살아가길 원하는 트랜스젠더의 양심은 호르몬 치료나 성확정 수술을 선택한 행위와 별개며, 어떤 잘못에 대한 예측이 '의도의 진정성'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 바티칸 신앙교리부는 같은 문헌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를 인용하며 ‘설령 어떤 이가 죄에 넘어갈 지라도’ 트랜스젠더의 세례성사가 그런 승인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바티칸 신앙교리부는 두 교부의 가르침은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가르침도 함께 인용했다. “성사의 문은 어떠한 이유로든 닫혀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 자체가 문인 세례성사가 그러합니다. 교회는 세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입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복음의 기쁨」, 제47항 참조)
혐오와 차별은 하느님의 언어가 될 수 없으며, 교회는 이를 교묘한 말로써 교회의 가르침으로 포장하며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논리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더라도 교회 공동체에 속한 누구든지 어떤 이유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기에 위험하다.
교회에 축복을 청하는 성소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지닌 선한 양심에 바탕을 두고 교회가 가능함 범위 안에서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목적 배려다. 성소수자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소중한 생명이며, 그 창조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 하느님을 믿어 그 뜻을 실천하려는 트랜스젠더는 세례성사를 통해 교회 공동체에 속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는 선한 양심의 결과는 교회 안에서 공공연한 추문이나 혼란을 야기할 위험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우리의 신앙 안에서 성찰한다.
이에 성소수자들에 연대하는 가톨릭교회의 평신도들은 서울주보에 실린 이와 같은 글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동시에 우리는 교회에 성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세례성사를 청하는 트랜스젠더의 양심에 비추어 그에게 세례성사를 베풀지 판단하기를 요청한다.
2023년 12월 9일
대림2주 인권주일 · 사회교리주간을 맞이하여
가톨릭 앨라이 아르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