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9일
글라렛선교수도회 이승복 라파엘 신부
교회는 날짜마다 해당하는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는데요, 오늘은 성 로무알도 아빠스의 축일입니다. 성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요.
저희 수도회가 스페인에서 시작된 수도회라 신학생 때 잠시 스페인에 가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제 옆 방에 있던 신학생 이름이 로무알도였습니다. 카메룬에서 온 친구였는데 같은 신학생 그룹에서 둘 다 나이가 조금 많은 편이었다 보니까 그 신학생과 이야기도 많이 하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카메룬에서 온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범위를 넓혀서 소위 아프리카라고 통칭해버리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만나 친구가 될 정도로 깊이 이야기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죠. 그래서 저에게 아프리카란 하나의 집합으로, 관념으로, 많은 경우는 편견이 섞인 여러 가지 이미지들로, 이를테면 내전, 가난, 기아, 대자연, 원시 부족... 이런 인상들로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로무알도를 알게 된 이후로는 아프리카, 카메룬을 떠올릴 때 친구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내전이 일어나고 기아가 창궐하고 사자와 코끼리가 돌아다니는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나와 다를 것 없이 생활하는 내 친구와 내 친구의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저에게 굉장히 큰 의미였는데요, 아프리카를 나와 동떨어진,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관념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 친구가 살아가는, 우리와 비슷한 생각과 꿈과 갈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개별적인 사람들의 땅으로 상상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죠.
여기 이 사무실을 이제 한 석 달째 띄엄띄엄 오고 있는 거 같은데요. 이전까지 제가 만나본 성소수자들 혹은 그의 가족들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숫자였고, 그들과 이런 주제로 깊이 얘기를 나눠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라는 단어를 들을 때처럼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사회적으로 이야기되는 이미지들, 때로는 왜곡되어 있기까지 한 관념들에서 크게 벗어난 생각들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집합적인, 관념적인,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만을 가지고 생각하고 판단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 나오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이제는 ‘성소수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가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의 표정, 감정들, 같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안에서 오고 갔던 공감과 연대의 분위기들... 이런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이제 ‘성소수자’라는 단어는 관념적이고 어떠한 통속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각 사람들이 진실한 얼굴들로 이야기할 때의 그 떨림으로 집합적으로 묶을 수 없는 특별한 각각의 고유함들로 다가옵니다. 제가 모임을 조금씩 나오면서 느끼게 되는 중요한 체험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 달에 인천 은행동 성당에서 하늘님과 길벗님의 특강이 있었죠.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을 통해서 관련 기사들을 쭉 따라가면서 읽는데, 인상적인 부분들이 많았습니다만 그 가운데 하나가 다음 내용이었습니다. 주임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관련 행사를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윤리신학 전공 신부님’을 초대해서 성소수자 관련한 교회 가르침을 들으려고 했었답니다. 그런데 문득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먼저 성소수자 본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우선이고 중요할 거란 생각을 해서 이렇게 초청 특강을 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 말씀대로 어떤 주제가 피상적인 관념이나 이미지로만 남지 않으려면 해당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어떤 편견이나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직접 듣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나아가 서로 친구가 됩니다. 그러고 나면 그 때부터는 다른 시각이 열리는데요, 더 이상 그것이 관념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의, 내 친구의 고유하고 특별한 이야기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모임을 나오면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아마 듣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에게 조금씩 특별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 듭니다.
교회는 6월을 예수님의 마음을 특별히 기억하고 공경하는 예수 성심 성월로 보내고 있습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떤 행적을 남기셨는가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깊이 묵상해보면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누구보다 그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각의 사람들을 알아가고 그들을 사랑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하게 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닮는다는 것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의 삶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되며, 그 과정을 통해 친구가 되고 서로 연대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이 미사와 우리의 모임들을 통해서 예수 성심을 닮아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각자의 세계를 확장해가며 사랑으로 연대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