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쿠스 1주년 미사 강론

2023년 8월 21일

인천교구 김학선 아우구스티노 신부

“Todos! Todos! Todos!”

부모님들과의 인터뷰 단상. 종교적 신념이 자녀의 성소수성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연구 보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나는 가톨릭 신자인 부모들 대부분에게서 신앙의 중요한 역할(위로와 의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그들은 제도 교회와는 분리된 신앙, 다시 말해서 개인적인 신앙에만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신앙에 있어서 하느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렇더라도 신앙의 위로와 의지를 제도 교회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존재들이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과연 이들에게 교회란 무엇인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란 무엇인가? 이것은1600년 전 뜻밖에 사제가 된 뒤 죽을 때까지 40년의 세월 동안 아우구스티노가 천착했던 주제요 질문이기도 하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사도시대부터 시작된 엄격주의와 관용주의의 긴장과 대립은 황제숭배칙령이 끝나던 기원 후 309년, 박해가 끝나던 시기까지 이어졌다. 이 시기는 어쩌면 교회가 이제 새로운 시대에 스스로의 모습을 어떻게 방향 지을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시기였을 것이다. 마치 오늘 1주년을 맞이하며 앞으로의 방향과 비전을 생각하고 있는 우리 아르쿠스 처럼.

죄인들의 자리는 없다는 도나투스파의 배타적 엄격주의에 맞서, 아우구스티노는 포용과 관용의 교회론에 토대를 놓았다. 도나투스파의 극단적 주장은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려는 교회의 행동을 죄악시하는 형태로 이어졌고, 자신들의 의견에 반대하고 용서를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폭력을 가하기 까지 했으며, 용서를 설파하던 아우구스티노를 암살할 계획까지 세우고 실행하기까지 했지만 실패했다. 아우구스티노는 어머니 교회를 사무치게 체험한 교부이다. 오랜 방황 끝에 어머니 교회의 품에 안겨 하느님의 자비를 열정적으로 선포했던 그에게 교회는 자녀를 낳아 젖을 먹이며 영적으로 양육하는 어머니와 같았다. “이 어머니는 자녀를 조건 없이 가슴에 품는다. 이 어머니는 자녀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한다. 어머니 교회는 자녀들을 위하여 사랑과 자비의 애간장을 태우고 산고를 겪고 있으며, 나그넷 길을 걷고 있는 자녀들에게 휴식과 치유의 여관이 되어 준다” (아우구스티노, ‘요한 복음 강해’., 최원오, 2016 재인용). 어머니는 교부들이 전해준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교회의 표상이 되었다.

어머니 교회

어머니 교회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단죄하는 법관, 통제하고 명령하는 군주가 아니라, 허약하고 나약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아주는 어머니, 세상 모두가 외면하고 손가락질할 때에도 축복과 지지를 거두지 않고 끝없이 믿어주고 희망하며 조건 없이 품어주는 어머니, 교부들은 교회를 이런 어머니로 이해했다.

“어머니 교회는 모든 사회적 약자를 자녀로 품어 안는다. 어머니 교회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녀를 외면하는 법이 없다.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울고, 상처 입은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정의에 목마른 이들과 함께 분노한다” (최원오, 2016).

어머니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어머니 마음으로 세상을 품어 안고 뒷바라지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니, 우리는 어머니로서 서로를 받아 들이고 품어 안고 살아가는 거룩한 교회다.

1962년 교황 요한 23세는 ‘어머니 교회’ (mater ecclesia)에 대한 감동적인 연설로 교회 쇄신을 향한 공의회의 위대한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이는 오랜 배타주의 전통을 향한 장엄한 고별사이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랑의 기쁨’에서도 재인용된 이 문장은 교회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물어 온 이들에게 준 답변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신부는 엄격함이 아닌 자비의 영약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 사랑이 넘치는 모든 이의 어머니, 인자하고 인내하는 어머니, 갈라져 사는 자녀들에게 다정하고 자비로운 어머니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요한 23세, 1962).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사랑의 기쁨에서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표현을 인용해 말합니다.

“교회는 법정이 아니라 치유의 장소입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참회에 관한 설교’)